영화 : 컨택트
감독 : 드니 빌뇌브
장르 : 드라마/SF
개봉 : 2017.02.02
시간은 흐르는 것일까,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는가
언어, 사고, 그리고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
_ 영화 <컨택트(Arrival)>
어느 날 지구에 도착한 12개의 비행 물체
세계 각국은 혼란에 빠지고, 정부는 나름의 방식으로 외계 생명체와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언어학자 루이스가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지구에 도착한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Heptapod)'
그들의 언어는 우리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집니다
앞뒤가 존재하는 선형 구조가 아닌,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는 비선형 언어
이는 단순히 말이나 문자 체계가 다른 것이 아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시간을 받아들이는 방식마저도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의미합니다
헵타포드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며, 전체로 존재하기에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지합니다
- (스포 有)
영화 초반부터 계속 등장하는 루이스의 딸 '한나'
그 모습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그 장면들은 미래의 모습입니다
"사람의 사고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형성된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학설에 기반하여,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그들의 사고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그녀 또한 시간의 흐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루이스는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훗날 사랑하게 될 사람이 그녀의 곁을 떠나고, 딸 또한 희귀병으로 세상을 일찍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비극을 알면서도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선택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아이를 가지게 되는 미래를 보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 원작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영화와 소설 모두 미래는 이미 정해져있다는 운명론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원작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영화에서는 헵타포드가 훗날 인류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왔음을 명시했으나, 소설에서는 '이들은 단순히 지구에 방문하도록 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묘사됩니다
즉, 그들은 미래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바꾸려 하기보단, 이미 결정된 미래를 그대로 현실화하는 데 주력하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목적을 알아내거나 정보를 얻어내려는 시도는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무의미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는 '미래는 바꿀 수 없으며,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운 일부 지구인들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보아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미래를 아는 것은 오히려 선택이 아닌 의무감 또는 절박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미래를 아는 것'과 '자유의지를 갖는 것'은 양립할 수 없으며, 헵타포드가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동시적 의식' 속에서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영화에서는 '미래를 알고 있다면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루이스의 행동은 마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처럼 그려지고, 미래를 받아들이면서도 사랑과 삶을 선택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녀가 이미 결정된 미래를 그대로 따라야한다는 헵타포드의 사고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딸의 죽음에 대한 설정도 다릅니다
소설은 추락 사고로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불치병으로 설정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루이스가 죽음을 알고 있음에도 딸을 만나기위해 '선택'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 외에도 소설에서는 외계 함선이 지상으로 직접 내려오지 않고 궤도 상에 머무른 채, '체경'이라는 112개의 기계장치로 인간과 소통합니다
헵타포드의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언어학, 물리학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나
영화에서는 물리 법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한 내용을 완전히 생략했습니다
(소설에서는 페르마의 원리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페르마의 원리
빛은 최단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택한다
빛의 반사, 굴절의 법칙을 설명하는 스넬의 법칙의 결과와 정확히 일치
-
선형적 시간의 흐름과 비선형적 시간의 흐름은 각각 '인과론'과 '목적론'을 은유합니다
'인과론'은 과거의 상처와 부정적 사고방식이 현재를 얽매고, 미래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목적론'은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과 의미를 중심에 두고, 주어진 현실을 보다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미래를 안다고 해서 피하지 않고,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 안에서 우리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인연인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비록 정해진 미래가 있더라도 그 안에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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