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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사유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강연 <빛과 실>

사진 이옥토 <a paper>, 2019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 조금 늦었지만

작가님의 강연 원문을 이제야 읽어보고 글을 씁니다

한강 작가님의 수상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들떴었는지

원문을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기뻤는지

 

 

 

재작년, 채식주의자의 개정판 표지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지만 불쾌한 장면들에 읽기를 주저했었어요

몇 번이나 숨을 다시 고르고 고르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불편함을 마주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해 나간다는 것을

 

 

 

글은 폭력적인 사회에 비폭력으로 맞서는 힘이 되고,

문학은 시대의 어둠과 짙은 그림자를 밝히는

촛불이 되기도 합니다

 

 

 

심장과 심장을 잇는 금()실을 상징하는 것들이

반짝이는 빛을 머금고 더 멀리 연결될 수 있기를

 

 

 

이옥토 <결로>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 강연 <빛과 실>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225027-nobel-lecture-korean/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4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4 was awarded to Han Kang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www.nobelprize.org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실, 빛을 내는 실

 

 

 

 

_채식주의자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_희랍어 시간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_소년이 온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던 박용준은 살해당하기 전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을 읽은 순간, 두 개의 질문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고,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_작별하지 않는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_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실을 타고?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_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

 

 

 

@OKTO_LEE,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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